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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2 00:54

나의 성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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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성소이야기

 

 김용태 신부(마태오·대전교구 서천본당 주임)

‘김대건 신부 후손’ 이란 운명적 부르심
순교 의미 깨달으며 뜨거운 사랑 체험

 

김용태(마태오) 신부(대전교구 서천본당 주임)는 ‘사제’, ‘신부’라는 어휘를 이해하던 무렵부터 사제가 되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사제성소를 발견하게 된 특별한 시점이나 계기가 따로 없이 사제 이외의 다른 길은 머릿속에 그려본 일조차 없었다.

김용태 신부는 한국인 최초의 사제이자 순교자이며 성인인 성 김대건 신부의 방계 4대손이다. 정확히 김 신부 고조 할아버지의 사촌 형님이 김대건 신부다.

김 신부와 가족 모두에게 김대건 신부의 후손이라는 사실은 커다란 자부심이었다. 김 신부뿐만 아니라 4형제 모두가 사제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김 신부의 큰형 김선태(야고보) 신부는 대전교구에서 병원사목을 담당하고 있고 작은형 김현태 신부와 동생 김성환 신부는 대만 신죽(新竹)교구 소속으로 현지에서 사목하고 있다.

김 신부는 사제가 되기 전 가정생활이 곧 신앙생활이었고 세상에서 최고라고 말하는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교회 안에서 최고의 것들만이 눈에 들어오는 김 신부에게 사제로서의 삶은 당연히 최고의 삶이요 최고의 선택이 됐던 것이다.

김 신부에게 성소란 ‘하느님께 대한 더 큰 사랑’이다. ‘내가 순교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김 신부는 부제품을 앞두고 한 달 간 피정을 하면서 순교란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하느냐 사랑하지 않느냐의 문제라는 진리를 깨달았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타오르는 불처럼 김 신부를 휘감는 엄청난 사랑의 체험이었다. 하느님께 대한 더 큰 사랑이 바로 사제직이고 김 신부가 고백하는 성소의 핵심이다.

김 신부는 “김대건 신부님은 순교와 사제직이 하나로 만난 제 성소의 상징과 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김대건 신부의 후손으로서 성인과 가문에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부담감은 늘 있어 왔다. 그러나 김 신부는 “김대건 신부님의 후손으로 느끼는 부담감은 ‘편한 멍에와 가벼운 짐’과 같아서 긍정적 의미의 ‘건강한 부담’”이라면서 “후손으로서의 부담감은 좋은 사제로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박지순 기자>



■ 손영순 수녀(카리타스·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고픈 바람

봉사한 만큼 성소 깊이 뿌리 내려

 

다섯 살 꼬마는 세례를 받고 싶어도, 부모님께서 신자가 아니면 안 되던 시절이었다. 손영순 수녀(카리타스.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는 보채는 아이의 손에 이끌려 성당에 나오셔서 세례를 받으셨던 부모님으로부터 신앙을 키워나갔다.

학교와 집 사이에 있던 성당은 항상 쉼터이며 놀이터였다. 성장 후 청년 시절의 레지오마리애 활동, 주일학교 교사회, 청년회 등을 통해 신앙의 삶은 더 성장해 갔다. 그 활동들은 원래 내성적인 성품이 감춰질 정도로 사교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이었다. 8년 동안 직장생활을 할 때에도 늘 신앙은 삶의 원천이었고, 직장 안에서의 가톨릭 교우회를 만드는 용기까지 불어넣어줬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가톨릭교리신학원 과정을 수료하고 개신교 신학공부까지 했었다. ‘앎’은 ‘삶’을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해주었다.

수도 생활을 선택한 성소의 계기가 무엇이냐고 가끔은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때로는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할 때도 있었다.

“성소의 꽃이 어느 한 순간에 활짝 피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생의 모든 부분이 그렇듯이, 대나무 한 마디 한 마디가 모여 인생이 되듯이, 내 성소가 그렇게 씨앗이 뿌려지고 키워졌던 것이지요. 항상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과 함께 살고자 했던 봉사의 삶은 더욱 더 헌신적이고 항구적인 삶에로 초대하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게 했습니다.”

손수녀는 이런 지속적인 부르심에 대한 응답으로 1990년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로 입회를 하게 됐고, 이후 갈바리아 산상의 죽어가던 예수님을 껴안았던 성모 모성의 마음으로 임종자들을 돌보던 수도회의 정신에 맞갖게 살려고 노력했으며 보람과 기쁨도 많이 느꼈다.

수도회의 영성이 삶의 완성과 품위로운 죽음을 맞이하도록 모든 임종자들을 돕는 호스피스 활동이 주된 사도직이다 보니, 늘 죽음의 문턱에 있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

손수녀는 현세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가치관의 혼돈과 생명이나 삶에 대한 무분별한 선택, 죽음에서조차 차별적으로 대접받는 비윤리적인 상황을 안타까워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특히 수도자로서의 몫은 그리스도의 치유 현존의 삶을 사는 것이고 알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손수녀는 이런 사도직에 젊은이들이 기꺼이 응답하기를 기도한다. 좋은 것을 함께 살아가고 나누는 일은 세상의 그 어느 일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지난 수도생활동안 자신이 느꼈던 것처럼, 부르심에 응답하는 젊은이들도 ‘좋은 몫을 택하였다’라는 확신을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정아 기자?



■ 신선미 소장(젬마·전진상영성심리상담소장·국제가톨릭형제회)

독신의 삶, 공동체 안에서 힘 얻어

영성심리상담은 또 하나의 사도직

 

국제가톨릭형제회(AFI, 이하 AFI) 신선미(젬마ㆍ54) 전진상영성심리상담소장은 20대 초등학교 교사였던 20여 년 전, 신자의 한 사람으로서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도 하느님을 증거하는 삶을 소망했다. 그리고 그 삶은 하느님께 혼자인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는 독신의 길로 그를 이끌었다.

“세상에 필요한 누룩이 되는 삶을 꿈꿔 왔지요. 평신도로서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찾아내는 것이 제게는 너무나 뜻 깊은 일이었으니까요. 희망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 AFI 공동체였고, 독신의 삶을 선택하게 됐어요.”

신 소장에게 있어 독신 성소는 삶의 여정과 함께할 양식이 됐다. 신 소장은 독신 성소가 가진 하나의 큰 핵심으로 하느님과 자신과의 독특한 관계를 맺는 것이라 여기고 있다.

“독신 성소를 선택함과 동시에 우리는 심리적 고독의 공간을 선택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관계 안에 핵심이 있고, 그것이 독신 성소의 중심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 관계를 통해 신앙인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힘과 사도적 열정을 얻고, 또 그것을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나눌 수 있는 삶이 바로 독신 성소라고 봅니다.”

신 소장은 공동체 안에서 독신으로 살면서 수련의 과정을 거쳐, 회원 간 일생을 함께 살겠다는 상호 서약을 했다. 교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그만두고, 공동체 정신인 ‘시대가 원하는 사람’이 되고자 상담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시작했다. 신 소장의 관심은 심리와 영성의 연결로 이어졌고, 지금껏 영성심리상담 일에 매진해왔다.

“삶이 힘들 때면 회의도 생기거나, 한 인간이자 여성으로서 아내, 어머니가 되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은 기쁨과 충만함을 동반합니다. 때문에 내가 갈 길을 바꿔 선택할 마음은 없어요.”

신 소장은 아쉬움을 이기고, 자신의 길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으로 부르심의 힘을 꼽는다. 일상에서의 관상을 통한 기도와 묵상이 힘을 보탠다.

“누구나 태생으로부터 살아온 발자취 안에 하느님의 이끄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성소를 갈구하는 이들에게는 자기 가슴에 물어보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어요. 자기애에서 비롯된 편의에 의해 독신 성소를 선택하거나, 머리로 계산하는 것이 아닌 정말 어떻게 살고 싶은지, 하느님이 내 삶에서 어떻게 개입하고 계신지 말입니다. 성소는 그 이끌림에 ‘네’ 하고 대답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우현 기자>



■ 의정부교구 ME협의회 제4회 가족준비모임 부부들

‘결혼 안했다면 하느님 사랑 알았을까’

다툼속에서도 한뜻 이뤄 복음화 노력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헌장’(Gaudium et Spes)은 부부 공동체와 가정 공동체의 행복한 상태가 개인, 일반사회, 교회의 안녕과 직결된다(47항)고 밝히고 있다. 그만큼 가정은 사회와 교회 안에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고 있다. 사회와 교회의 안녕을 책임지는 가정의 출발점은 혼인성소로부터 시작된다. 의정부교구 ME협의회 제4회 가족준비모임 준비위원회 4쌍의 부부를 통해 그들이 살아온 ‘혼인성소’ 이야기를 들어봤다.

“부부는 작은 교회로서 부르심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네 쌍의 부부는 이구동성으로 혼인성소의 의미를 설명했다. 김철수(임마누엘·49)·오임주(마리아·47) 부부는 “둘 이상이 있는 곳에 예수님께서 함께하신다고 했는데, 아내와 남편 두 사람이 모인 부부 공동체가 바로 교회”라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그리스도인 가정은 그 자체로서 이미 하나의 교회라는 가치를 지니며, 소규모의 교회로서의 임무를 지닌다’(49항)고 한 ‘가정공동체’의 가르침을 혼인생활 안에서 체득했다고 말했다. 그 자체로 교회이기에 부부가 일치되어 갈수록 하느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박성원(알비노·49)·조진영(테레사·45) 부부는 “각기 다른 삶을 살던 두 사람이 거룩한 부르심에 함께 응답하는 것 자체가 신비”라며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하느님의 사랑을 알 수 없었을 것 같다”고 진솔하게 털어놨다.

물론 결혼성소를 지켜나가는 데 있어 어려움은 언제나 존재한다. 서로 의견이 달라 다투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다름’을 이해하고 배우자를 하느님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혼인성소의 깊은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고 고백했다.

정규철(요한·57)·이혜경(수산나·51) 부부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혼인성소를 주신 이유는 세상을 ‘사랑화’시키는 데 있다”며 “부부가 사랑으로 하나가 돼있을 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 사회가 개인주의와 물질주의로 물들어갈수록 ‘혼인성소’가 중요하다고 네 쌍의 부부는 설명했다. 세상에 속해 좌절과 극복을 반복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해야 하는 부부가 변화되고 빛과 소금이 되어야 사회도 변화될 수 있다는 뜻에서였다.

김덕기(마르셀로·46)·서경희(유스타·46) 부부는 “부부는 복음적 삶을 세상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사도직을 살아가야 하는 소명을 받았다”며 “선교의 첨병인 부부가 잘 살 때 이웃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지연 기자>


 ▲ 김철수 씨, 정규철·이혜경, 박성원·조진영, 김덕기·서경희 부부(왼쪽부터).

 

이우현 기자
박지순 기자
이지연 기자
주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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