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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너는 내 운명
너는 내 운명이라는 영화 보지는 못했지만

내용은 각설하고 중요한 주제는 그 어떠한 것도 이들의 사랑을 갈라놓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운명 이였기 때문이지요.

즉 운명은 단순한 행복이 아닙니다. 운명은 그저 순리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운명은 많은 것을 거슬러야만 하는 고통의 길입니다.

 

첫째, 내 생활을 거슬러야 합니다. 운명적인 만남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만일 운명적인 상대방이 원한다고 한다면 기꺼이 내가 살고 있던 안락함이나 틀을 거슬러야만 합니다. 내가 포기할 수 없었던 삶의 습관 마져도 그 운명을 위해 거슬러야만 합니다.

 

둘째, 내 의지를 거슬러야 합니다. 내가 가졌던 꿈이나 희망, 그리고 심지어 내 이상적인 행복 또한 포기해야 합니다. 내 모든 생각을 거슬러 운명적인 상대를 위해 내려놓아야 합니다.

 

셋째, 나 자신을 거슬러야 합니다. 즉 내 생명 마져도 거슬러 그에게 내어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운명의 굴레에 빠지게 되면 결국 돌이킬 수 없습니다.

 

예언자 요나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니네베에 예언을 해야만 하는 운명을 거슬러 배를 타고 도망치다가 결국 엉뚱한 뱃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결국 큰 물고기에게 먹혀 사흘을 지낸 후에야 운명을 따릅니다.

 

아직 남자를 몰랐던 시골 처녀 마리아 또한 마찬가지이지요. 무엇이 옳은 것인지, 그리고 자신이 선택하는 이 사건이 얼마나 큰 고통과 시련으로 그녀를 이끌 것인지 본인은 스스로 알지 못하였지만, 운명임을 알았을 때, 거스르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삶은 돌이킬 수 없는 고통의 삶으로 그녀를 내몰았지요.

 

그런 그녀와 예수님을 보호하는 수호천사로 정해진 배필인 한 남자, 요셉, 요셉은 바로 자신의 운명을 순명으로 받아들인 성모 마리아의 운명적인 남자입니다.

 

또한 십자가 아래에서 서있던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 요한은 운명적으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집에 모시며 아들 노릇을 하게 됩니다. 받은 사랑을 주는 사랑으로 갚게 된 것이지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면서 다마스쿠스로 말을 달리던 사울 또한 운명적으로 예수님을 만나 눈이 멀어버립니다. 그리고는 다시 운명적인 하나니아스를 만나 눈이 치유되어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게 되지요. 그리고 다른 운명인 바르나바를 만나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복음의 세계화에 첫 열매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운명은 한 번 받아들이는 순간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또한 운명은 우연 속에 필연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잠시 스쳐가는 인연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오래오래 사귀는 벗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저 오래 안다고 해서 운명은 아니지요. 운명은 바로 내 삶을 바꾸는 존재들입니다. 그 만남의 시간이 길던지 짧던지 말이지요.

그런 면에서 보았을 때, 오늘 세리였던 마태오와 시골 랍비 예수님의 만남은 우연함 속의 필연적인 만남, 즉 운명적인 만남인 것 같습니다

마태오는 오늘도 세관에 앉아있습니다. 즉 죄의 허물 속에서 그저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가던 희망 없는 젊은이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운명처럼 다가오십니다. 그리고 단 한 말씀을 하십니다. “나를 따라라

이것이 나의 운명임을 아는 사람에게는 많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저 그 한마디만으로 족합니다.

나를 따르라 하는 예수님의 부르심은 단순히 당신의 제자를 모집하는 부르심이 아닙니다.

 

이 부르심은 죄인을 주목하여 눈여겨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부르심입니다.

이 부르심은 죄인을 용서하심을 알게 되는 부르심입니다.

이 부르심은 죄인을 통하여 하느님의 복음을 완성하겠다는 의지의 부르심입니다.

이 부르심은 이미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부르심입니다.

 

예수님에게 발씻김을 받고 그분과 함께 먹고 마시며 그분의 사랑을 듬뿍 받은 그는 이제 더 이상 세리 마태오가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 마태오로,

예수님의 사도 마태오로

복음서의 저자 마태오로 거듭납니다.

 

운명의 장난이라는 말 아시지요?

이 운명을 선택함으로서 복을 받고 모든 것이 잘 되리라 믿었는데 내 의도대로 돌아가지 않고 무언가 꼬이고 어긋날 때 쓰는 표현이지요.

마태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운명처럼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분과 함께 하기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거스른 마태오, 이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롭게 거듭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줄 알았던 그에게 이제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입니까? 예수님을 떠나 보낸 후 그의 삶은 고난과 고통, 그리고 순교로 이어지는 험난한 여정이었습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아직도 죄인의 삶을 거스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운명을 받아들이도록 말과 글로 외치다가 결국 운명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말지요.

 

그러나 그는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마태오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오직 한 분

너는 내 운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운명을 위해 그는 기꺼이 자신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지요. 그것이 더 큰 행복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순교자이신 성 손자선 토마스의 고백이 떠오릅니다.

나는 솔직히 죽는 것을 몹시 무서워합니다. 그러나 나에게 죽는 것보다 몇 천배 더 무서워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나의 주님이시오,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저버리는 일입니다.”

 

또한 이번에 시복되신 복자 이언민 마르띠노가 죽음 앞에서 기뻐 고백하신 말씀도 떠오릅니다.

그렇구말구 기쁜 마음으로 내 목숨을 천주께 바치는 거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우리의 운명으로 받아들이셨습니까?

아니 그 이전에 그분을 나의 운명으로 받아들일 마음의 각오는 되셨는지요?

그분은 이미 우리를 당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이시고 그 댓가를 목숨으로 지불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나의 교만을 거스르고, 나의 욕망을 거스르고, 나의 죄와 거짓들을 거슬러 우리의 운명이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도 그분은 나를 따라라하고 말씀 하십니다 함께 하길 원하십니다.

동행하길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생명을 당신께 온전히 의지하길 바라십니다. 그분은 결코 우리의 손을 놓지 않으십니다. 그분과 함께 끝까지 갑시다. 그분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이제 함께 큰 소리로 외쳐봅시다.

 

예수는 내 운명!!!”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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