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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7 10:54

내 눈에 보기 싫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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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얼마나 쉽게 내 눈에 보기 싫은 것을 '틀렸다' 혹은 '옳지 않다'고 말하고 살아가는지...

내 눈의 잣대와 내 생각의 잣대가 절대화 될 때,

우리의 말은 칼이 되고 창이 되어 상대방을 상처주게 됩니다.

그 사람이 정말 옳던, 그르던, 우리는 주님의 모습대로 복음을 살아가는 것에 힘써야 합니다.

그 사람을 고치려고 애쓰지 말고...

예수님께서 병자를 치유하시고, 바리사이 율법 학자를 비판하시기는 하셨지만

단 한 번도 그들의 율법을 바꿔라, 없애라 하신적이 없으십니다.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고 하시면서 그 근본정신을 살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내가 만든 율법과 원칙을 주장하면서 그대로 살지 않는 이들에 대해 폄훼하고 비웃고 비난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한술 더떠서 타인의 삶에 관여하고, 그들의 자유를 억압하려들기까지 합니다.

특히 내가 사랑한다 여기는 이들에게 이러한 구속은 더 강하게 나타나곤 하지요.

그러나 이것은 복음적이지 않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것은 각자의 몫입니다. 비록 내가 보기에 타인이 더 잘되기를 바라는 것 그 자체는 선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상대방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려 하는 것은 교만이요 위선입니다.

자신의 입장에서는 선이라고 생각하면서 기분 좋을지 모르지만, 사실은 결국 자기 뜻이 이루어진 것에 대한 자기 만족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간단하게 생각을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일, 혹은 내가 힘들어 하고, 좀 간섭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강하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 누군가 계속 해야한다고 지적하면서, 내가 잘못한 것이고, 생각이 짧은 것이고, 모자란 사람이라고 평가하면서 간섭하고, 참견한다면 과연 기분이 어떨까요? 당연히 매우 불쾌할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생각을 우리가 지적하고 요구하는 상대방이 똑같이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시면 우리가 얼마나 타인에게 죄를 짓고 살고 있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내용을 반박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틀린것은 고쳐야 하지 않느냐, 그가 잘못된 길로, 악으로 가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느냐?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이들에게 굳이 말할 필요 없다고 말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이들에게 자꾸 이야기 하는 것은 결국 무의미한 것이고, 되려 상대방에게 상처만 주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상대방과 상관 없이 그 말을 하는 나는 누군가를 상처 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잘못되었다, 틀렸다. 물론 그러한 생각들로 죽어도 그에게 옳고 바른 것을 알려 주고 싶다면 말하십시요. 단 잘 준비해서 한 번만 말하시면 됩니다.

그가 깨달을 수 있으면 그는 그 한 번으로도 족합니다. 하지만 깨달을 수 없는 사람이면 열 번 말을 해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상처와 미움만 커져갑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죄를 지적하면서 결국 내 옳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려 드는 오만한 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우리는 말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

한 번 더 참고, 인내하고, 섬기고, 봉사하는 온유와 겸손의 모습이 그 어떤 논리적이고 합당한 지적질보다 낫습니다.

타인을 탓하고 타인의 죄를 비난하기 보다는 우선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선과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고 대하십시요. 그것이 그들을 변화 시킬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훌륭하고 거룩하고 옳은 말을 하던 바리사이 율법학자가 없었을것 같습니까?

아니요, 차고 넘쳤을 것입니다.

오늘날 감동을 주고, 기쁨을 주고, 깨달음을 주는 사제들이 없을것 같습니까?

아니요,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삶이, 생각이 변했나요?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가르침 따라 복음의 정신을 살아가며 신앙의 행복을 누리고 있나요?

여기에는 확실히 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참된 거룩함은, 참된 기쁨과 행복은, 오히려 침묵속에 죽임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납니다.

우리 삶의 변화는 오히려 행동하는 양심, 실천하는 복음을 통해 드러납니다.

하물며 한 인격체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부족함을 지적하는 것은 결코 이웃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저도 자신을 반성합니다.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공동체에 삶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형제들에게 지적하고, 비판하던 오만함을 반성합니다.

그저 내가 지키고 너는 못지키니까 난 말 할 자격이 있다는 세속적 판단으로 형제들에게 함부로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오히려 그런 형제들을 위해 섬기는 자세로 희생하고, 봉사하고, 죽어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데 인색했습니다.

 

대화 또한  전체의 뜻을 헤아리기 보다는 상대방의 말마디 가운데 내 귀에 못마땅하게 들리는 문단들을 딱 꼬집어 비판하고, 거부하곤 하였습니다.

결국 복음의 가장 중요한 정신인 사랑을 나누어 주기 보다는 내 뜻을 나누어 주기에 급급하였고,

이해를 하기보다는 받기만을 원하던 이기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다짐해봅니다. 보다 더 침묵하고, 보다 더 섬기기를...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도 동참하시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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