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자 홍상희 사도요한

사랑하올 저희의 어머니께

어머니 안녕하세요? 항상 저희와 함께하시는 어머니이신데,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이렇게 안부 인사를 드리니 조금은 어색합니다. 

십자가 위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저희에게 하신 부탁을 잊고, 어머니를 늘 마음속에 품고 살지 않는 저에 모습을 되돌아봅니다.

수도원에 들어 온지 4개월이 지났습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 어느덧 녹음이 짙어진 5월 이곳 수도원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머니께서 저와 함께해주시고, 기도해주시며 도와주시는 그 자애로우심에 감격하여, 어머니 품에 안기신 예수님처럼, 저도 어머니의 눈을 바라보고 어머니의 볼에 제 볼을 맞대어 봅니다. 그렇게 어머니를 생각하면 할수록 그리고 사랑하면 할수록 신비롭게도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고, 맹렬한 유혹의 엄습과 아픈 과거의 상처에서 오는 쓰라림이 이내 잠잠해짐을 느낍니다.

무엇보다 어머니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시고 나서부터 하늘에서 예수님을 만나 그분으로부터 천상 모후의 관을 받으실 때까지 품고 계셨던 오로지 단 하나의 마음, 바로 예수님에 대한 사랑 그 사랑을 제 마음에 품고 있으면, 저에 육신의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이 제 마음속에 뜨겁게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성모님의 성심으로 말미암아 부모의 깊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고, 용서하게 되며 더욱더 사랑하게 됩니다.

저는 프란치스코 전교봉사 수도회의 청원자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어머니의 여러 모습들 중에 어머니께서 엘리사벳을 찾아가신 일을 마음에 새겨봅니다. 어머니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당신의 소명을 알게 되어 이를 수락하신 후에 곧바로 엘리사벳을 찾아가셨습니다. 한명의 여인으로서 임신한 사실은 주변 사람들에게 마땅히 축하를 받아야하는 사건이었지만, 당시 정황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음에도 어머니는 두려움을 간직한 채 혼자 숨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하느님 체험에서 오는 크나큰 기쁨을 혼자 소유하려하지 않으셨습니다. 엘리사벳의 잉태 소식을 듣고 도움이 필요한 그녀를 찾아가 함께 기쁨을 나누고, 그녀를 정성껏 돌봐주셨습니다. 저는 이 안에서 저희 수도회의 전교와 봉사 정신을 바라봅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어머니처럼 자신을 내어던져 봉사하고, 어머니께서 엘리사벳에게 부르신 노래처럼 하느님을 전하고 찬양하는 전교의 모범을 본받고 싶습니다.

어머니, 어머니의 달도 이제 끝자락에 와있습니다. 앞으로의 시간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제가 주님을 향해 나아가면 나아가갈수록 뜻하지 않게 필연적으로 자라나는 가라지들이 훗날, 그저 가라지로 남겨 버려지지 않고, 그 가라지들이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특별한 선물로 열매 맺도록 어머니, 저는 당신께 무한히 의탁합니다. 그리고 여기 모인 저희 각자가 받은 성소를 어머니의 손에 맡기오니, 어머니의 손길로 성소를 보존하여주시고, 주님의 뜻 안에서 성장시켜주소서. 아멘.